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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야기

추미애 법무부장관 행보 정치 이력 프로필 요약

by ┃ 2019. 11. 29.

추미애 의원의 법무부 장관 행보는 정말 놀랄수밖에 없다 

추미애 의원은 5선의원으로 내년에도 당선될 확률이 굉장히 높기 때문이다. 판사 출신, 추미애 의원의 법무부 장관으로서의 활약이 굉장히 기대 된다. 

 

 

 


 

그럼 추미애 의원은 그동안 어떤 행보를 거쳐 지금까지 왔는지 알아보자.

 

추미애 지역구는 서울 광진구을이며, 여성 정치인으로 헌정사상 최초 5선이며 6선도 거의 확실한 인물이다.

 


1.- 출생 : 1958년 10월 23일 

- 고향 : 대구

 

 - 가족관계 : 

 

배우자 서성환, 자녀 1남 1녀

 

- 학력


~ 2004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경제학 석사 졸업


~ 1983 한양대학교 대학원 수료


~ 1981 한양대학교 법학과 졸업


~ 1977 경북여자고등학교 졸업

 

- 판사이력

 


~ 1995  광주고등법원 판사


-  전주지방법원 판사


-  인천지방법원 판사


1985.3  춘천지방법원 판사


1982  제24회 사법시험 합격

 

 



2.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

고 김재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1995년 정치에 입문하게된다

 

 


 


3.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선거운동에 소극적인  민주당을 대신할 조직인 국민참여운동본부 설립 추미애 의원이 공동본부장으로 활동하였으며,

 

그 유명한 희망돼지로 모금운동을 진행하여 돼지 저금통 20만개를 만들어 국민참여로 대선비용 마련 희망돼지 모금 운동으로 모인 금액의 총액은 72억 7천 8백만원 (신용카드 및 저금통등 다양한 방법)

 

 

 


 

4. 추미애 의원의 흑역사

추미애 의원은 2004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새천년 민주당의원으로서 탄핵에 찬성 하게되었다

 

탄핵 당시 눈물 흘리는 유시민 작가


뒷 이야기를 들어보면 추미애 의원은 탄핵에 반대 한것으로 알려져있었고, 당의 입장을 따랐던 과오를 범한것으로 알려져있다 .

추미애 의원은 제 정치 인생중에 가장 큰 실수고 과오라고 후회하였다. 그후 추미애 의원은 삼보일배로 국민들의 마음을 돌릴려고 했지만 여론은 냉담했다.

 

 


당시 추미애 의원은 광주 금남로에서 출발하여 무릎에 피가 나고 깨지면서도 15km를 삼보일배를 하며 갔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시면서 “추미애가 저런 모습으로 있는 건 도저히 못 보겠다.”고 TV를 꺼버리셨다고 한다.

 

 

그후 예상과 같이 추미애가 속해있던 새천년민주당은 총선에 참패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후 추미애 의원에게 3번이나 사람을 보내 장관직을 제의 했으며 언제 돌아올거냐며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후에 추미애 의원이 당표가 되었을 당시에 봉하마을에서 참배를 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4. 2012년 국회로 다시 돌아온 추미애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 대선 캠프 국민 통합위원장을 맡았다

 


이후 대선에 패배 하였지만 2015년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가 되었을당시 문재인 대통령을 돕는데 헌신하였다. 타 의원들은 문재인 대통령은 안된다고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미애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을 적극 지지하였다

 


 

5. 2016년 민주당 경선에서 득표율 54.03% 과반 확보로 압도적으로 당대표로 당선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 후에도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며 문재인 정부에 힘을 실어주는데 앞장서고 있다

 


추미애 의원의 판사시절 일화

1985년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은 공안정국을 만들어가며 불온사적을 압수수색을 시작했다. 춘천지방법원 판사로 일하던 추미애는 춘천에서 제일 큰 서점에 대한 검찰의 압수 수색영장을 청구 받았다. 

추미애는 부당한 영장청구를 기각하였다. 같은날 전국 법원에 일제히 같은 영장이 접수 되었고 춘천을 제외하고 모두 발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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