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최부자라는 명성은
한 번쯤 들어봤으리라 생각된다.
경주 최부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훌륭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경주에 가게 되면 경주 최부자 댁을 잊지 않고
방문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막상 이곳저곳 다니다 보니 잊고 있었다.
그런데 식사를 하고 주변을 산책하고 있다가,
표지판을 보니 경주 최부자 댁이라고
쓰여 있지 않은가?
여행을 하다 보면 이런 행운도 가끔은 온다.
먼저 건물부터 설명하자면,
이 건물은 국가 민속 문화재 제27호이다.
경주 최씨 최부자의 종가로 월성을 끼고
흐르는 남천 옆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최부자의 집안은 도덕적 의무와 관용을
몸소 실천해 온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12대 동안 만석 지기 재산을 지켰고 학문에도
힘을 써 9대에 걸쳐 진사를 배출하였다.
이 가옥은 조선 중기 무렵 췌언 경대에 최 씨 집안이
경주시 내남면 이 소리에서 교동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1779년 경에 건립되었다.
사당을 안채의 동쪽에 배치하지 않고 서쪽에
배치한 점, 기둥을 낮게 만들어
집의 높이를 낮춘 점, 집터를 낮게 닦은 점 등은
성현을 모시는 경주향교에 대한 배려로
최부자 댁의 건축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최부자 가족들이 현대인들에게
더 존경심을 받는 이유는
독립운동의 영향이 가장 컸다.
12대 만석의 마지막 부자인 독립운동가
최준 선생이 태어난 곳이 이곳이다.
선생은 영남의 대지주로서 조선 국권 회복 단과
대한 광복회에 군자금을 제공하는 등
독립운동을 지원하였으며,
특히 항일투쟁을 전개하다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심한 옥고를 치렀다.
친일로서 나라까지 팔아먹는 사람까지 있는가 반면에
많은 부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고통을 마다하지 않고 솔선수범하는 모습이
존경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선생은 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 백범 김구 선생에게
거액의 군자금을 보내는 등
독립운동사에 빛나는 공적을 남겼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해방 직후 선생은 나라를 이끌어 나갈
인재를 길러야 한다며 모든 재산을 기증하여
계림 대학과 대구대학을 설립하였다.
이것이 바로 오늘의 영남대학교의 전신이다.
그렇게 뜻이 좋게 학교를 설립했는데
영남대학교의 운명도,
그 역사를 보면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정치적인 이야기는
여행 리뷰이기 때문에 여기까지만 하겠다.
요즘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한국 제외 뉴스가 연신 보도되고 있다.
현대에서는 합리적이고
냉철한 행동으로 일본 불매운동을
진행하자는 움직임이 있다.
단지 정치인들이 보여주기 식으로
하는 행동과는 확실히 구분된다.
그런면에서 한국의 국민성은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요즘 세대들을 보면
일본 국민과 일본 정치인들을 별개로 보며,
조용히 일본 불매운동을 해가고 있다.
일생을 항일운동에 헌신한 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지금 한국인들이
되새겨 보며 본받아야 할 것이다.
전통한옥이지만 최부자의 생가이기
때문에 그분의 업적을 알지 못하면
일반 한옥으로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분의 일생을 짧게 요약한 것이다.
늘 말하지만 여행은 아는 만큼 다르게 보인다.
아래는 경주 최부자집 가훈 이다.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마라"
"재산은 만석이상 모으지 마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흉년에는 남의 논밭을 매입하지 마라"
"최씨 가문 며느리들은
시집온후 3년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사방백리 안에 굶어 죽은 사람 없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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